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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

 


생애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남부 로라우(Rohrau)라는 작은 마을에서 수레바퀴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사 성가대에서 노래하던 어린 하이든은 7세 때 제국 악장의 눈에 들어 비엔나의 카펠하우스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하이든은 18세 때까지 노래 및 피아노, 바이올린 교육을 받았다. 그 후 약 8년 동안 하이든은 어린아이들에게 레슨을 해주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당시 비엔나에 살고 있던 유명 작곡가 포르포라(N. porpora)로부터 작곡의 기본을 닦게 된다.

 1750년대 후반, 포르포라의 소개로 하이든은 귀족 사회에 작곡가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다가 27세가 되던 1759년, 뵈멘의 모르친(Morzin) 백작 궁의 악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얼마 안 가 모르친 가의 악단은 재정적으로 어려워져 하이든은 악장의 지위를 떠났다. 그 뒤 모르친 백작의 추천으로 헝가리의 대귀족,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 집안의 부악장으로 임명되었다. 62년에 파울 안톤이 사망하고 동생인 니콜라우스 후작이 작위를 계승했는데 하이든은 그 뒤 30년 가까이 니콜라우스 후작을 섬기게 된다. 1761년에 비준된 계약서에는 하이든이 음악에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행정 관리 업무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사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로 후작이 된 니콜라우스 1세는 매우 야망이 큰 사람이어서 자신의 궁정을 빈의 것에 필적하고자 광대하고 호화로운 에스테르하차 궁을 세웠다. 하이든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이곳에서 갖가지 새로운 작곡에 대한 요구를 간신히 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바쁘게 일해야만 했다.

 비록 궁궐 생활로 세상과는 격리된 상황이었지만 점차 하이든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780년대 초 하이든은 유럽 전역에 걸쳐 유명 작곡가가 되었다. 유럽의 대도시에서 그의 작품들을 연주했고 수많은 곡을 의뢰받았다. 또한 1780년대 모차르트와의 교분이 시작되어 프리메이슨 결사에 가입하게 되었다.

 하이든은 살아생전 최고의 영예를 받은 행복한 음악가였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정력과 재능으로 창작에 매진했던 하이든은 충분히 그 보상을 누렸고, 1790년대 말부터는 경건한 종교 음악 작곡에 몰두하게 된다. 오라토리오의 작곡(1801년)으로 너무 큰 노력을 기울여 완전히 건강을 해치게 된 하이든은 그 후로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고, 1809년 숨을 거둘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엄청난 작품을 정리하는데 할애하였다.

 

 

 


하이든의 건반 음악 개관

 


 하이든의 피아노 음악은 사실 최근 몇십 년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다른 많은 곡, 즉 교향곡, 오라토리오, 현악 4중주 등이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조명받는 것에 비교해 볼 때 그의 건반악기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무시를 당해온 셈이다. 하이든은 당시의 다른 피아노 작곡가(모차르트, 베토벤)들이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이었던 것과 비교되어 건반악기와는 그다지 큰 인연이 없는 작곡가로 여겨졌다.

 하이든은 50곡이 넘는 건반악기 소나타를 비롯해 무곡, 소곡, 디베르티멘토를 남겼다. 이 곡들은 당시의 상황에 따라 클라비코드, 하프시코드, 피아노 등의 매체를 위해 쓰였다. 하지만 피아노는 이들 악기 모두를 대치할 수 있는 악기이므로 피아노곡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이든은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음악 기법에 관해 실험하였고 여러 기법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초기 소나타에서 발견되는 취약점은 후기로 갈수록 점점 발전했고, 학생들을 연습시키기 위한 곡이 있는가 하면 예술적인 욕심을 갖고 쓴 작품이 있다.

 하이든의 소나타는 베토벤 소나타의 명성에 가려 거의 알려지지 않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진지한 연구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1918년에 Breitkof&Hartel 사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의 소나타 52개가 전집으로 출간된 것이 그 예이다. 이후 1957년 Hoboken이 새로이 작품 목록을 작성했는데 이 번호(Hob)가 오늘날까지도 가장 널리 통용된다. 하이든 소나타는 모두 Hoboken 번호 XVI에 속해 있으므로 본문에서 로마숫자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작품번호는 모두 Hob. XVI 번호에 의한 것이다.

 

 

 


하이든 건반악기 작품 분류

 


초기 소나타(창작 초기-1765)

 

1750-60년대 소나타 : Hob. XVI. 6(G 장조), 2(B♭장조)
1765년 : Capriccio, Hob. XVI. 1(G 장조)

 1765년 이전에 하이든이 쓴 것으로 알려진 소나타는 대략 18곡이다. 가장 초기의 곡들은 경쾌하고 단순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당시 비엔나에서 유행하던 양식이 엿보이는데, 셋잇단음표와 트릴을 혼합시킨 첫 주제와 종지 등이 전형적이다. 이들은 꾸미거나 세련됨 없이 우아하다.

 초기 소나타들에서는 1악장을 반드시 가장 비중이 큰 악장이 아니며 오히려 미뉴에트의 트리오 부분이나 느린 악장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 악장은 시작 악장과 대칭적인 정도의 비중으로 되어 있다.

 


성숙기 소나타(1766-71)

 


Hob. XVI : 18, 19, 20, 44, 45, 46, 47

 하이든의 건반악기 소나타는 1760년대 말에서부터 상당한 전환을 맞는다. 많은 소나타가 없어졌지만 남아 있는 곡들은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경향을 보인다. 모티브에 의한 악장들 간의 통일성이 보다 눈에 띄고 미뉴에트는 "Tempo di menuet"으로 대치되어 있다.

 이후 발전된 6개의 소나타가 나오는데 이들의 성숙은 악보 첫 시작부터 눈에 띈다. 모티브들은 더 대칭적인 형태를 띠게 됐으며, 조성적으로도 큰 구조에 걸맞게 확립되어 있다.

 또한 C. P. E. Bach의 영향을 받은 듯한 풍부한 양식의 곡이 있다. 열정적인 스타일의 한 예로 단조가 사용된 점을 들 수 있다. 하이든 소나타 중에서 8곡만 단조 조성을 사용했는데 그중 2개는 소실되었다. 18세기 작곡가들이 단조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역시 질풍노도와 감정 과다 양식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1774~1785년에 출판된 작품들

 


1774년 출판 6곡 : Hob. XVI. 21-26
1776년 출판 6곡 : Hob. XVI. 27-32
1780년 출판 6곡 : Hob. XVI. 35-39, 20
1784년 출판 3곡 : Hob. XVI. 43, 33, 34
1784년 출판 3곡 : Hob. XVI. 40-42

 1770년대에는 하프시코드에서 피아노로 전환되었고, 1780년대 이후의 하이든 소나타는 피아노를 위해 쓰인 것이 분명하다. 1773년에 작곡한 6개 소나타(Hob. 21~26번)는 예술적 상승에서 갑자기 벗어나 예전으로 되돌아간 듯 보이는 곡으로,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라 평가받는다. 그중 Hob. 23번이 가장 자주 연주된다.

 

하이든 소나타 Hob. 23, 1악장 시작 부분

 

1776년 출판한 6곡(Hob. 27-32) 중 가장 중요한 것은 Hob. 32이다. 이 곡은 1, 3악장이 사나우면서도 강한 에너지를 보이고 있어 흡사 베토벤을 예고하는 듯하다. 

 

1780년 출판한 6곡(Hob. 35~39, 20)의 작곡 연도는 사실상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모두 3악장이며 한 곡만 제외하면 빠름-느림-빠름의 패턴으로 되어 있다. 단조 조성으로 되어 있는 Hob. 36, 20은 더 높은 기교와 표현력을 요한다. 

 

1784년 3곡의 소나타(Hob. 40, 41, 42)는 모두 2악장으로만 되어 있다. Hob. 41의 1악장이 제대로 발전된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고 Hob. 40의 마지막 악장도 역시 소나타 형식의 구조를 갖고 있다. Hob. 42는 주제에 이어 단조, 프렐류드 스타일이 나오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후기 소나타(1789년 이후)

 


1789년 전후 : Hob. XVI. 48, 49
1794년경 : Hob. XVI. 50, 51, 52

 건반악기 소나타 작곡은 몇 년 동안 뜸하다가 1780년대 말에 두 곡의 작품으로 재개되었다(Hob. 48, 49번). 1789년은 하이든이 '현대적' 피아노-포르테를 막 구입한 때이기도 하다.

 Hob. 48은 2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악장은 "환상곡 풍 변주곡"이라 불릴 만하며 Andante con espressione라는 표기에 걸맞게 강한 표현성을 나타낸다.

 Hob. 49번은 유명하고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그의 소나타로는 상당히 대규모 작품이다. 1악장에서는 특징적인 모티브로 시작하여 극적으로 발전시킨다. 주제가 매우 피아니스틱하고 가벼운 점을 모차르트를 연상시킨다.

 

하이든 소나타 Hob. 49, 1악장 시작 부분

 

하이든의 독자적인 창의성은 Hob. 501악장에서 보인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주제를 갖고 있으나 놀랄 정도의 상상력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하이든에게서 유일하게 페달 표시가 있는 악장이다. 

하이든 소나타 Hob. 50, 시작 부분

 Hob. 512악장 구성이며, 1악장은 서정적인 안단테로 되어 있는데 소나타와 론도 형식을 섞어 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2악장은 빠른 프레스토로 오히려 짧은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소나타 Hob. 521794년에 쓴 곡으로 대규모 구성과 더불어 탄탄함과 이전 소나타에 비해 도약적인 발전이 돋보이는 대작이다. 파워와 민첩함 그리고 표현적인 면을 모두 요구하는데 모차르트와는 아주 다른 개성의, 웅장함과 거의 심포니적인 면들이 나타나 19세기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1악장은 외향적인 성격으로 프랑스 서곡풍의 부점으로 시작되어 당당한 행진을 연상시킨다. 2악장 아다지오는 섬세하고 표현적인 아리아라 할 수 있다. 3악장은 익살맞고 재치있으며 기존의 다른 소나타 피날레 악장과 달리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이든 소나타 Hob. 52, 1악장 시작 부분

 

 

 



하이든 건반 음악의 기법적 특징

 

 


 하이든은 거의 50년에 걸쳐 건반 음악을 썼고 그 50년은 바야흐로 음악 역사적으로 볼 때 양식적으로 하나의 관습이 새로운 관습으로 넘어가게 되는 매우 변화가 심한 시기였다. 하이든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과 그의 아들들의 음악을 습득하며 자랐고 고전주의가 확립되기 시작하던 과도기를 보냈다. 또한 모차르트가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기간 내내 작곡했으며, 젊은 베토벤에게는 노련한 작곡 기술과 빈 악파의 전통을 전수했다.

 그의 스타일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쳤기 때문에 초기 작품이 주는 느낌 말기 작품이 주는 느낌 다르다. 초기 작품들은 대중을 의식하고 썼다기보다는 교육용으로 썼으며 친밀하고 주관적인 느낌이 강하다.

 하이든의 개성으로 많은 이들이 꼽는 것은 그의 음악적 '유머'이다. 당연히 이렇게 진행되리라 믿었던 부분들을 마치 장난치듯 잘라내어 버리고 은근슬쩍 뒤에 집어넣는다거나 갑자기 진행을 멈춰 버린다거나 하는 면, 음역이 난데없이 바뀌거나 다이내믹을 과장해 대조적으로 집어넣는 일 등,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변하는 비전형적인 것들이며 규칙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 예측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하이든 소나타의 최종 악장에는 다른 어떠한 작곡가도 이처럼 멋지게 표현한 적이 없는 즐거운 생명감과 명랑한 기분, 기지가 넘치는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사용하였다. 하이든 음악의 결정적인 매력은 미뉴에트 악장의 우아함, 느린 악장의 주관적 표현성, 그리고 마지막 악장의 재치를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이든 건반악기 작품의 연주를 위한 사항을 언급해 보면, 당시 피아노의 소리는 현재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이든이 명백히 페달 사용을 요구한 것은 Hob. 50의 경우이며, 대체로 하이든 말년에 와서야 페달 사용이 나타난다. 1770년대 말까지 하이든 소나타에는 셈여림 지시도 없다. 어쩌면 하이든은 어떠한 건반 악기로도 연주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셈여림을 적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박유미 「피아노 문헌」 음악춘추사(2011) p.6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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