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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피아노 음악의 전반적 상황

 


 

피아노 이전

 


 

 

 피아노는 이탈리아의 악기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1655-1731)가 최초로 1700년대 초반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랜 음악 역사에 있어 항상 '노래'의 측면에 관심이 많았다. 바로크 초기의 오페라의 발생이 그러하고, 기악 음악 중에서는 주로 현악기에 집중을 해 왔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도 여전히 오페라 하면 이탈리아 오페라를 떠올리게 되며 바이올린의 악기는 이탈리아 제품인 경우가 많다. 당시 유행했던 하프시코드는 특성상 '노래'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반주적 기능, 장식적이거나 기교적인 데 치중되었고 이러한 점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단점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건반악기도 '노래하는' 악기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아노가 정말로 음악가와 청중의 마음에 쏙 들 정도로 훌륭한, 노래가 가능한 제품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되는 시점까지는 피아노 이전의 악기들이 초기 건반악기 문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바로크 작곡가들의 경우 피아노보다는 이전 건반악기에 더욱 익숙했고, 그들의 작품 역시 그런 매체를 염두에 두고 쓰였기에 바로크 시대에 사용되던 일반적인 건반악기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하프시코드(Harpsichord)

 


 하프시코드클라비쳄발로(clavicembalo; 이탈리아), 클라브생(clavecin; 프랑스)으로도 불린다. 하나 또는 두 개의 건반판이 달려있으며 크기는 오늘날의 그랜드 피아노보다 작다. 하프시코드는 기본적으로 현을 튕기면서 소리 내는 원리를 가졌다. 현을 뜯는 방식으로 소리 내는 것은 기타의 음향 원리와 닮아서 음질이 투명하고 밝다는 특징을 가진다.

 

 초기 하프시코드는 3옥타브, 혹은 4옥타브 정도의 작은 것으로, 테이블 등 원하는 곳에 아무 데나 놓을 수 있는 휴대형의 상자 모양이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말경에는 스톱 장치 때문에 크기가 커져 더 이상 그러한 형태로는 불가능하고, 다리가 달린 붙박이형이 되었다. 하프시코드는 갑도 비싸고 귀족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서 각 나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에게는 가구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하프시코드뜯는 작용으로 소리가 나다 보니 셈여림의 조절이 거의 불가능하다. 건반을 세거나 약하게 치는 정도로는 셈여림을 차이 나게 만들기 어렵다. 그러한 약점으로 보완된 장치는 2단의 건반을 사용하거나 스톱(stop; 음색을 바꿀 수 있게 하기 위해 건반 안쪽 장치를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같은 장치로도 점진적 셈여림의 조절은 불가능하지만 차이나는 음색의 선택은 가능하다.

 


 

클라비코드(Clavichord)

 


 

 

 하프시코드 외에 피아노 이전의 악기로 중요한 것은 주로 독일에서 보급된 클라비코드이다. 이 역시 현이 달린 건반악기인데 하프시코드처럼 현을 뜯어서 소리 내는 것이 아니라 현을 때려서 소리 나게 하는 원리 즉, 피아노와 더 가까이 연관된다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음량이 극히 적고 빈약해서 앙상블에 참여할 수 없었고 공공연한 연주용으로 사용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 가지, 클라비코드가 하프시코드와 비교해서 가질 수 있었던 장점때려서 소리 내는 원리이다 보니 연주 시 손가락의 타격의 속도와 힘이 악기 음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비록 작은 소리 범위 내이긴 하지만 연주자가 음량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손가락을 건반에서 떼지 않는 상태로 위아래로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가 해 주면 음이 맥박 치듯 떨리는 소리로 이어지는데, 이는 마치 현악기 연주자들이 비브라토를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 감정표현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요인이 되었다.

 

 


 

피아노(Piano)

 


 

 피아노는 오늘날의 피아노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의 개량을 필요로 했던 발명품이다. 피아노가 그 이전의 건반악기와 근본적으로 다른 음향 생성 원리를 가지게 된 것은 현을 때리는, '해머 액션'으로 작동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으로 인해 소리의 셈여림 조절을 폭넓게 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후 피아노가 개발되던 초기(18세기) 독일인들은 이 새로운 악기의 원래 명칭(piano e forte)을 약간 변화시켜 포르테피아노라 부르게 되었고, 그러다 점점 이 이름이 줄여져서 오늘날의 "피아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실제 피아노를 처음 고안해 낸 사람은 크리스토포리였지만 이탈리아가 건반악기 분야에서 크게 관심받는 대상이 아니다 보니 크리스토포리의 이름은 많이 잊혔으며, 오히려 독일의 질버만(G. Silbermann)이 초기 피아노에서 가장 중요한 제작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질버만이 피아노를 제작하여 궁정에 공급하기 시작한 것은 1730년경 이후였다.

 

 초기의 피아노는 해머가 작아 음량이 대형 하프시코드보다 작았다. 게다가 처음 크리스토포리에 의해 피아노가 만들어졌을 때 손가락으로 타격의 힘을 다양하게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피아노 제작 발전에 있어 도 하나 중요한 이름은 슈타인(J. A. Stein)으로, 그의 피아노 액션은 손가락의 자극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모차르트가 1777년 21세 때 남긴 한 편지를 보면 "슈타인 피아노에서는 건반을 치면, 그 후 건반을 계속 누른 채로 있건 손을 떼건 상관없이, 해머는 뛰어올라 현을 치자마자 바로 그 순간 다시 제자리로 떨어집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1788년에 가서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 537에 Fortepiano 혹은 Pianoforte라 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피아노가 완전히 하프시코드를 대신하는 건반악기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 것은 1790년경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 박유미 「피아노 문헌」 음악춘추사 (2011) p.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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