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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피아노 작품

 

 

 

2. 변주곡

 

 

 변주형식은 기존 형식 중에서 브람스의 음악적 사고를 표현하는데 특히 적당한 형식이었다. 변주곡에 브람스가 즐겨 쓴 주제는 슈만, 파가니니, 헨델, 하이든 등 주로 그 당시에 주목받던 작곡가의 작품에서 따온 것인데, 모두 간결하고 단순하다.

 

 주제와 변주라는 형식을 통해 브람스는 제한된 화성 및 선율의 틀 안에서 여러 가지 분위기와 정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는 각 변주곡에서 주제의 형식적 구성이나 화성, 저음부의 움직임 등을 자유롭게 다루었는데 이들 변주에서 화성 및 대위법적 요소를 서로 결합하거나,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거나 하는 데 있어 빼어난 테크닉을 구사했다. 테크닉을 과시하기 위한 작품을 철저히 배격했던 브람스이지만, 변주곡 형식을 통해서 내적 세계의 표현 못지않게 기교가 있어야 하는 외면적인 효과를 의도하기도 했다.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9 f#단조는 20살 때 만나 그토록 의지가 되어 줬던 슈만이 그다음 해 라인강에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를 반영한다. 그해 여름에 슈만의 마지막 아이가 출생했고 그때 이 곡을 클라라에게 선사했다. 슈만의 영향을 받아 변주마다 서명이 붙어 있는데 어떤 것은 브람스로, 어떤 것은 크라이슬러(Kreisler)로 되어 있다. 브람스라 이름 붙은 변주는 시적이고 부드러운 내성적이고 크라이슬러라 이름 붙은 것은 보다 격정적이다.

 

 브람스 변주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하는 중요한 작품은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4이다. 1861년에 작곡했으며 헨델의 건반악기를 위한 《Suites de Pieces》에 들어있던 하나의 아리아를 25개의 변주곡과 푸가로 완성한 것이다. 구성에 서의 엄격함 못지않게 정신적인 자유로움이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서정적이고 대위법적인 연주, 리듬과 테크닉적인 면에서의 다양성, 옛 대가를 연상시키는 변주, 극히 화려하며 피아노에서 최대의 에너지를 발휘시키는 곡이 몇 개씩 그룹을 이루고 있다. 

 

 한편, 변주곡의 마지막에 붙은 푸가를 헨델의 주제가 변형되어 푸가 주제로 쓰이는데 원래의 우아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육중하고 엄격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로 바뀐다.

 

 

3. 성격소품

 

 

 변주곡에서 보인 기교적이며 외형적인 화려함은 그의 만년에 작곡된 작품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만년의 작품은 간주곡(Intermezzo) 중심의 소품으로, 내면적이고 사색적이며 브람스 특유의 서정성과 정신과 고뇌의 바탕을 둔 작품이라 '고뇌의 자장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 3부 형식, A-B-A 형식을 통해 자유로운 악상으로 표현되는 이 작품에는, 이전의 작품과도 구별되게 관현악적 기법이나 화려한 테크닉, 그리고 음악 외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피아니즘이 실려있다.

 

 일반적으로 성격소품이 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데 반해 브람스의 성격소품에는 문학과의 연결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표제적인 제목을 피하여 카프리치오, 인터메초, 랩소디, 발라드 등의 제목을 붙였다. 

 

 발라드(Ballade)와 랩소디(Rhapsody)는 가장 큰 규모의 곡이다. 브람스의 젊은 시절 작품인 발라드 Op. 9는 브람스 작품 중 유일하게 문학적 연관성이 있는 곳이다. 1854년 알게 된 시 "에드바르트(Edward)"에 영감을 얻어 음악에 착수하여 총 4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프리치오(Capriccio)는 대개 빠르고 경쾌하며 변덕스러운데, 리드믹한 면이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성격적인 면으로도 동요가 많으며 때론 불같이 격렬하기도 하다.

 

 

 

브람스 피아노 음악의 특징

 

 

1. 신고전주의

 

 

 브람스는 음악사에 '19세기 최후의 고전 작곡가'라고 기록될 정도로 엄격한 형식의 고전미를 추구했다. 19세기 후반은 리스트와 바그너로 대표되는 신낭만주의 음악이 주도적이었지만, 브람스는 세대의 조류에 역행하면서 객관적인 고전음악의 길을 택했다. 옛 형식이나 법칙을 무시하고 나타나는 새로운 사조에 대해서 끊임없는 경계심을 가졌던 브람스는 슈만과 베토벤을 모델로 튼튼한 구조를 음악의 궁극적 완성으로 보았다.

 

 고전으로 향하는 브람스의 경향은 어린 시절의 스승이었던 마르크스젠의 영향으로, 마르크스젠은 브람스에게 바흐와 베토벤만을 교육했다. 베토벤의 형식과 바흐의 다성적 기법을 배운 브람스는 형식의 투명성을 지향했고, 외형적이거나 사치스럽고 경박한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서는 어떤 과장이나 극적인 표현을 찾아보기 힘들다. 

 

 피아노에 있어서 화려함과 웅장함 등 표면적인 것을 철저히 배격했던 브람스는 19세기 후반의 건반 음악계에서 리스트의 반대진영의 총수 입장에 놓이게 된다. 소나타 및 주제와 변주로 시작해서 다양한 캐릭터 피스로 방향을 옮겼는데 고전적인 형식의 틀 안에서 화성적, 리듬적, 대위법적인 요소를 한데 모아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 냈다.

 

 

2. 서정성

 

 

 안개로 유명한 북독일 함부르크는 온화한 겨울, 선선한 여름과 특유의 쓸쓸한 가을이 있는 곳이다. 30여년을 보낸 이런 북독일의 자연환경은 브람스의 기질에 독특한 특징을 부여하여, 브람스의 음악은 뭔가 스산하면서도 포근하고 따스한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우수, 고독 등 그의 음악을 통해 가을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은, 그의 음악에는 한 번 보면 절대로 잊히지 않는 함부르크의 늦가을 들녘의 풍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3. 선율과 화성

 

 

 브람스가 다른 어느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보다도 선율에 더욱 신경 쓴 것은 사실인데, 그의 선율은 다른 서정적 선율 작곡가, 슈베르트나 쇼팽과는 다르다. 슈베르트가 아름답고 산뜻한 선율을 썼다면 쇼팽은 화려하면서도 우수에 차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브람스는 잔잔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브람스는 화성적인 면에서 전통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관계가 먼 조로 전조하는 일은 거의 시도하지 않았고 귀로 듣기에도 그의 음악은 온전한 화성으로 들린다. 한 조성의 모든 도와 7화음, 그 전위화음을 골고루 씀으로써 낭만 음악적 색채는 풍부하게 갖춘다.

 

 

 브람스의 음악은 흔히 보수적인 성향을 띤 절대 음악으로 간주하여 미래로 향하는 '현대적'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은 썩 강조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브람스 음악은 대위적인 성향과 선율의 움직임으로 인해 20세기 작곡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작곡가였던 쇤베르크가 오히려 브람스에 대해 '진보주의자'라 칭하기도 했다. 

 

 

4. 리듬 

 

 

 브람스는 많은 작품에서 헤미올라의 특징을 나타내는 리듬을 수없이 많이 썼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브람스 음악에서 가장 특징적인 징표로 여겨질 수도 있을 정도이다. 브람스의 탁월한 리듬감은 당김음, 2:3이나 3:4의 변형 리듬, 박절의 변화로 나타난다. 

 

 

5. 대위적 성향

 

 

  브람스의 피아노 음악이 갖는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는 그가 동경했던 선배 음악가의 음악 세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브람스는 중세 이래 슈만에 이르기까지 대가의 작품에서 배우고, 그 전통 위에 자신의 음악을 이루고자 했다. 브람스는 리스트에게서 피아노란 악기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정신을 배웠다. 슈베르트에게서 변주의 자유로움을, 쇼팽에게서는 피아노 특유의 서정성을 그리고 존경했던 슈만에게서는 피아노를 통해 무한한 정신세계를 표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계시받았다. 대위법적인 성격은 브람스 음악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로, 어린 시절부터 바흐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위법적인 성격에서뿐만 아니라 화성적인 면에까지 바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박유미 「피아노 문헌」 음악춘추사(2011) p.26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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