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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사진 출처 flickr

 

 바흐, 베토벤과 함께 독일 음악의 '3B'라 불리는 브람스는 멘델스존이나 슈만이 확립한 독일 낭만주의를 계승하면서도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경향을 가진 작곡가로 널리 평가된다. 소나타, 변주곡, 그리고 말년의 소품집 등을 남긴 브람스는 우수에 차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오늘날도 크게 사랑받는 작곡가가 되었으며, 후기 낭만주의 스타일의 큰 스케일의 피아노곡 역시 꾸준히 연주 무대에서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생애

 

 

 브람스는 1833년 5월 7일, 북독일의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콘트라베이스 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현악기 및 호른 등의 관악기까지 여러 악기를 배우는 것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1840년에는 코셀(Cossel)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피아니스트로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1843년에는 최초의 연주회를 가졌다. 그 후 코셀의 선생이었던 마르크스젠(Eduard Marxsen)에게 인계되어 피아노 및 작곡과 이론 공부를 했다. 바흐 음악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주고 독일의 옛 거장과 초기 음악의 튼튼한 구조를 익히게 한 마르크스젠 선생을 통해 브람스는 앞으로 음악가로서 걸어야 할 음악에 대한 가치관을 굳혔다. 기본적으로 매우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품성을 가진 브람스가 세기말적인 급격한 감정 주의로 흐르지 않고 평생 옛 음악을 소중히 다루고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튼튼한 형식을 갖춘 음악을 숭배한 것은 바로 이 시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낮에는 앞길을 개척해 가는 진지한 음악가로 활동하면서, 밤에는 유흥가에서 오락음악을 연주하여 어려운 집안의 생계를 도와야 하는 힘든 10대를 보내던 브람스는 1848년과 1849년 두 번의 독주회 개최를 통해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서 비범한 재능을 청중과 비평가들에게 확인시켰다. 

 

 1853년 브람스는 당대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작곡자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을 만나 우정을 다졌고,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요아힘 서클의 친구들과 어울려 철학, 문학, 역사 등의 교양을 쌓았다. 또한 요아힘을 통해 슈만을 알게 되는데 이 만남에서 슈만은 20세 청년 브람스에게서 독일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확신하게 된다.

 

 슈만 서클은 브람스를 반갑게 맞이했고 자신들이 발행하는 잡지 《음악 신보》에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으로 극찬의 글을 실어 브람스를 세상에 소개했다. 한편, 슈만이 정신병으로 인해 병원에 수용되고 난 후 브람스는 물심양면으로 은인의 가정을 도왔는데,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는 점점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어 2년간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1856년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었으며, 평생 품위 있는 사랑과 우정을 지속했다. 

 

 1857년에서 1862년 동안 고향 함부르크에 정착해 있던 당시 음악계의 큰 세력은 바이마르를 거점으로 리스트가 기수를 잡고 있던 이른바 미래음악을 지향하는 '신독일(Neudeutschen)'악파였다. 이들은 음악은 '표제'를 지녀야 한다는 사상 아래 이를 실현시켜 주는 음악 양식으로 '교향시'를 내세웠는데, 이에 반대하는 브람스와 요아힘 등 음악가는 1860년, '신독일' 악파에 반발하는 성명서를 냄으로써 그들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1862년부터 빈으로 거처를 옮긴 브람스는 빈의 음악계에서 환대받았고, 1872년 가을부터 1875년까지 빈 음악협회의 예술감독이 되는 등 브람스는 이제 작곡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게 된다. 

 

1882년 이후부터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레오폴트 훈장 수여, 함부르크로부터 명예 시민권을 받는 등 외적으로는 영광의 연속이었으나, 계속되는 지인들과의 사별로 브람스의 정신적인 고통은 극에 달했다. 18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타계한 클라라의 장례식을 마치고 피로와 비탄이 겹쳐서 브람스의 건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결국 자기 죽음이 임박함을 느끼고 작곡한 《11개의 코랄 전주곡》을 마지막으로, 부친의 사인과 같은 간암으로 1897년 64년의 생애를 마쳤다.

 

 

 

브람스 피아노 작품 개관

 

 

 

1. 소나타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는 작품 번호 1, 2, 5번으로 모두 20살이 되기 전인 초기의 작품이다. 견고한 고전적인 틀과 주제가 논리적으로 처리된 이 3개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젊음이 넘치고 정열이 가득 차 있으며, 관현악적인 수법과 음향이 두드러지며, 또한 그가 젊은 시절 심취했던 문학에의 열정이 반영되어 있다. 

 

 

 소나타 제1번 Op. 1, C 장조는 2번 소나타보다 늦게 완성되었지만 Op. 1로 출판되었다. 음악적으로 볼 때 슈만보다는 베토벤의 영향이 강하게 엿보이는데, 1악장은 베토벤의 Op. 106 "해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상시키는 주제로 시작된다. 

 

 2악장 Andante는 독일 중세의 시를 피아노곡으로 만들고자 한 시도이다. 첫 부분의 왼손 멜로디에 그 시의 가사 "남몰래 달이 뜨다."가 붙어 있으며 독창자(Vorsanger)와 합창(Alle)이 번갈아 가며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되어 있다.

 

 3악장 스케르초에 뒤이어 말달리는 느낌의 4악장이 이어진다. 4악장 중간의 서정적 a 단조 부분은 스코틀랜드 시인 번즈(R. burns)의 "내 심장은 고원에 있도다"란 시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소나타 제2번 Op. 2 f# 단조는 19살의 열정적인 영혼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어딘가 슈만의 《환상곡》 Op. 17의 정신을 닮은 듯한 이 악장에 대해 슈만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불꽃 튀는 듯이 시작되는 주제와 깊숙하고 신비로운 제2 주제가 인상적이다. 

 

2악장은 독일 민요시 "겨울이 대지를 이렇게 황량하게 쓸어버리다니 내 마음이 아프다네" 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나타 3번 Op. 5, f 단조는 5악장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앞선 소나타보다 개성적 스타일 면에 있어 보다 확고해졌다. 

 

1악장은 시작부터 극히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대담한 분출로 뇌리에 박히는 주제로 되어 있으며 그에 뒤이어 깊은 장송 곡적인 울림, A♭ 장조의 서정적인 부분 등이 차례로 펼쳐진다.

 

2악장은 녹턴 같은 "사랑의 장면"인데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

 

3악장 스케르초는 왈츠풍이기는 하지만 편안한 춤곡이기는커녕 정신 사납게 만드는 면이 있다. 빠른 아르페지오 장식과 왼손 도약, 서두르게 만드는 오른손 리듬 때문이다.

 

4악장 Intermezzo는 "회고(Ruckblick)"라 부제가 붙어 있으며, 마치 2악장 안단테에 대응하여 죽음과 장례를 표현하는 듯하다. 

 

5악장은 앞선 모든 것의 종결을 의미하듯 한 걸음 한 걸음씩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베토벤처럼 강한 제1 주제로 시작하여 3악장 스케르초의 분위기로 진행하다가 서정적인 제2 주제로 접어든다.

 

 

 

 

 

 

 

 

박유미 「피아노 문헌」 음악춘추사(2011) p. 26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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